2013년 6월 12일 수요일

주인을 문 개


주의 사항
- 이 글은 소설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자신을 이야기 한 것이라고 기분나빠하실 까봐 일부로 자료 조사도 안하고 그냥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 읽고 혹시 찔리시는 분이 있더래도 제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제게 뭐라고 하시는 순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

"지롤 허네.  우리는 그냥 정권의 개야 임마"

준상이 웃으면 술잔을 내려놓으며 옆에 앉은 미모의 아가씨 가슴을 매만졌다.   동수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준상 옆에 앉은 아가씨가 사실 맘에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 아가씨를 준상이 찜해 놓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동수 옆에 앉은 아가씨도 처음에는 맘에 들었었다.    처음에 입사 환영회를 해준다고 강남룸살롱으로 갈 때부터 동수는 준상이란 인간을 양아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신입사원 환영회라면서 먼저 동수보고 파트너 고르라고 할 때는 순간적으로 이 인간이 괜챦은 인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었다.   몇번 양보하는 척하다가 제일 이쁜 아가씨를 골랐다.  고르고서는

"선배님도 고르십시요. "

했더니 자기는 됬다고 마담에게 혜수 오라고 하는 것이다.

청담동 며느리처럼 곱게 늙은 마담이 혜수는 오늘 귀한 손님 오셔서 먼저 들어갔다고 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양아치가 술잔을 던져서 깨고 마담들 뺨을 때리고 난리가 났다.   어깨들 오고 분위기 안좋았었다.   동수는 겁나서 일단 그동안 배웠던 무술 방어 자세를 준비하며 드디어 기술을 쓰는 구나 싶었다.

"야 이 이년야.  니가 누구 때문에 물장사하는데 쉰소리를 해.   니들 저번에 무허가 자료 질하다가 국세청에서 그만 하라는거 내가 잘 해줬쟎아. "

국세청이야기가 나오니 마담은 한숨 한번 쉬고 어깨들 뺨을 때리고 화풀이한다.

 "빨리 혜수 데려와 이 새끼들아.  귀한 분이 오셨쟎아."

그러더니 준상을 보면서 웃는데 그 순간 동수는 인간의 깊은 심연을 바라본 것과 같이 등에 식은 땀이 죽 흘렀다.

그러나 마침내 온 혜수를 본 순간 동수는 준상의 마음을 같은 수컷으로써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에서 여 주인공을 하던 연예인이었다.   실제로 보니 TV보다 더 이뻤다.    그 순간 동수는 옆에 있는 아가씨가 싫어지면서 무척 불행해졌다.  그러면서 내가 이 양아치를 꼭 끌어내리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3

한달 전 동수가 고시원에서 돌아오자 어머니는 동수의 눈치를 살폈다.  눈빛으로는 어떻게 되었니라고 묻고 있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다.   동수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음악 소리를 키웠다.    메탈리카의 the unforgiven 기타소리만 동수의 마음을 두드릴 뿐이었다.   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가 조용해졌다.  엄마가 조용히 시킨 모양이다.    동수의 마음속에서는 오늘 받은 이메일이 드럼 소리에 맞추어 둥둥둥 거리고 있었다.

"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 "

3주 동안의 기다림이 아쿠스틱 기타였다면 아쉽지만 이라는 한마디는 일렉기타와 드럼의 폭발적인 화성으로 동수 머리를 두드렸다.

 스피커의 진동이 책상위에 싸맨 머리위로 웅웅 거렸다.  볼륨을 너무 키웠나?  아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누구지?  받고 싶지 않다.   모르는 번호다.   아는 번호면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모르는 번호라 일단 받았다.  내가 누군가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거부할 수 있을 만큼 자리잡은 사람이던가.

"김동수씨, 국정원의 강찬수 실장입니다."

국정원이라는 한마디에 동수는 긴장하여 음악을 껐다.



-2

동수는 강실장의 제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현실이 맞나?  내가 너무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던 나머지 자살했거나 꿈을 꾸는 것인가?  '조건부 입사'라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런 동수를 강실장은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강실장은 멍청한 새끼를 고른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었다.  아이씨 그냥 조차장이 권하는 대로 세번째 새끼로 할 걸.  조차장은 그냥 안정적으로 강남 좋은 집안 자제로 하자고 했는데.  강실장은 그런 놈들은 너무 나약해서 안 된다며 직접 동수를 골랐었다.  봐봐.  지방대에 집안에 돈도 없고 식구들은 많고.  이런 새끼들 끌어주면 독하게 충성한다니까.  강실장이 그 대학 출신이란 이야기는 않했다.  그래도 다들 알았겠지만.

 "그러니까 제 사수를 감시하면 된다고요? "
동수가 다시 물었다.  아 이 새끼 같은 말 세번째 시킨다.   진짜 바본가?

"그래. "
강실장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속으로 너 말고도 후보는 많다.  앞으로 30초 안에 그냥 갈거다. 강실장은 시계를 보며 다짐했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동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강실장은 일어나며

"회사에서 임시직으로 연락이 갈거다.  잘해서  정규직되라.  "  

-1
정말로 회사에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축하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 후부터는 그냥 꿈 같았다.  그냥 부모님 손 따라 끌려다니면서 사고 싶은 거 고르고 전화와서 만나자는 대로 만나주고 그냥 있으면 되었다.  혜경이마저 먼저 모텔에 손잡고 가더라.  이렇게 맘 편하고 생각없이 살아도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25년 인생에 있었나 싶다.   단지 맘에 걸리는 것은 강실장이었다.   무슨 국정원이 애들도 아니고 후배가 사수를 감시해.  이거 사기 아냐.  나만 뭔가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도 가끔 들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저절로 흘러 갔다.   어느새 첫출근날 책상을 배정받고 앉아 있는 동수에게 사수는 보이지 않았다.  3주간 휴가를 받아 동남아에 갔다고 한다.   무슨 휴가를 3주일이나 받아.  여기가 프랑스야? 국정원이 사회주의 복지직장이었어?   누구도 임시직 신입을 붙잡고 사정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얼핏 줏어듣기로는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기존 파트너는 짤리고 준상은 문책성 강제 휴가를 갔다는 것 같다.   무슨 문책이 휴가냐.  그냥 짜르면 되지.  이것이 바로 신의 직장의 힘이 구나.

 회사 생활은 아주 즐거웠다.   원장이 4대강 홍보하라고 공문내려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댓글을 남기고 보고서를 썼다.    사수는 심지어 출근하도록 되어 있는 날에도 보이지 않았다.

"준상이 새끼 어딨어?  빨리 출근하라고 그래 "

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몇 사람들이 허겁지겁 전화기를 들었다.

막상 동수가 처음 준상을 접한 것은 출근예정일로부터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준상이 출근하자 부장은 이새끼 저새끼 욕을 했지만 막상 데리고 방에 들어가고 나서는 웃음기가 있는 얼굴로 "야 이새끼야 적당히 해 임마" 하면서 준상의 등을 두드리고 나왔다.

"니가 동수냐? 난 서준상이다.  뭐하냐? 가자. "

   10년 전에는 잘생겼을 수도 있지만 머리가 벗겨질라고 하고 세월은 못 속이는 중년의 얼굴이다.  멋은 얼마나 부리고 다니는지.  그런데 뭔가 조금 오래전 스타일이었다.  예전 초등학교 때 보던 홍콩 영화 배우 주윤발이 바바리 코트를 입고 올백 머리를 했던 그런 스타일이다.     보자 마자 반말에 대낮부터 나가자고 한다.  부장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일어서는대 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의외로 부장님은 말이 없이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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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주차장에 가자 동수는 깜짝 놀랐다.  검은색 포르쉐가 있다.  설마 이 인간 차는 아니겠지.  이 인간이 점점 포르쉐 가까이 가더니 문을 연다.  니 사수는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인간 쓰레기로 내사과의 조사를 받고 있다던 강실장의 말이 새삼 머리를 치고 간다.  나도 정규직 되면 비리나 할까?  사수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을까 하는 생각도 새삼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수는 그 길로 차를 몰고 강남의 어느 큰 빌딩으로 들어갔다.  준상은 별로 말이 없다.  차 안에서는 무슨 옛날 중국 노래가 무한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동수는 비굴하게 웃으면서

"선배님 이 노래를 좋아하시나보내요?  무슨 CD에요?" 하면서 CD를 꺼내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준상은 짜증을 확 내면서 거칠게 동수의 손을 밀치며

 "야 내 물건은 절대 만지지마" 하는 것이다.

 정말 준상은 짜증나는 인간내지는 예의가 없는 인간인 것 같다.  차가 멈춘 곳은  K 건설.  국내에서 젤 큰가 두번째인가 하는 건설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데스크에 뭐라 하더니 "넌 여기서 기다려" 하고는 자기만 들어간다.  뻘쭘하게 앉아있던 동수는 미모의 리셉션 언니 얼굴만 훔쳐볼 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사장실 문이 열리며 대머리 인간이 나오면서 90도로 인사를 하며 환송을 한다.   준상은 기름이 잘잘 흐르는 웃음을 지으며 이러지 마시라고 예의 바른 흉내를 낸다.   그러더니 오늘 일 다했다고 환영식하자고 데려간 곳이 강남의 G룸살롱이었던 것이다.    술에 얼큰히 취한 준상이 회사에는 왜 들어왔냐고 물었다.

"네.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 . 동수는 왠지 준상에게 밟힐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FM대로 대답했다.  얼마나 수없이 갈고 다듬은 대답이던가.  표정, 억양, 속도, 톤, 눈빛, 손짓 거울을 보며 가족 친구와 함께 수없이 연습한 한 문장이다.  씩씩하면서도 무식하지 않게. 진지하면서도 오버하지 않게.  


2
그 후로 여러달이 지났다.  동수는 한달에 한번씩 강실장을 만나 그동안 본 것을 보고했다.  준상이 말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동수도 눈치는 있어서 대충 어디서 준상이 돈을 받는 지 감은 있었다.  하지만 강실장은 말없이 듣다가 더 조사해보라는 한마디 하고 가버리는 식이었다.  아니 이 인간들은 얼마나 해처먹어야 잡혀가는 거야.  동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수가 아침 일찍 출근해서 4대강 관련 심리전술 할당량을 채울라치면 준상은 늦게 출근하여 밥먹으러 가자고 오곤 했다.  가끔 준상이 일찍 오는 날이면 동수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서 투덜거렸다.

"정규직 새끼들이란"

정규직 새끼들은 늦게 출근하여 할당량도 뺀질거리면서 채우지 않곤 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열 받았지만 나도 빨리 정규직이 될 생각으로 참았다.  언제나처럼 동수를 태운 포르쉐는 회사 주차장을 시끄럽게 빠져나갔다.

"선배님 오늘은 평소랑 코스가 다르네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데이트가 있지."

요즘엔 강남 쪽 회사들에서 주로 점심을 먹었었다.  그런데 차는 한남대교 쪽으로 가지 않고 효자동 쪽으로 간다.  약속 장소는 북촌의 한 카페였다.  차를 대지 못해 동네를 여러번 돌다가 아무대나 대었다.

"강북은 이래서 안 좋다니까."

좁은 골목길에서 내리면서 나는 차문이 돌담에 긁힐까봐 낑낑 거렸다.

"내릴 필요 없어.  그냥 여기서 차보고 있어."

"……개새끼"

얼마 후 준상이 돌아왔을 때 나는 주차요원과 한바탕 하고 있던 중이었다.  준상 옆에는 보기만 해도 까칠 할 것 같은 여자가 있었다.  준상이 좋아할 외모가 아니었다.

"주기자님,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어서 타세요.  동수야 넌 지하철 타고 복귀해라. "

"…. 개새끼"



3

주기자가 누구야.  분명히 준상이 쩔쩔매고 굽신대고 있었다.  준상의 약점에 가까운 것 같다.  동수는 회사로 돌아가 네이버에서 주기자를 검색했다.  임시직에게는 범용 인물 검색 허가가 안 나온다.  준상이 허가한 범위만 되는 데 그 새끼는 일을 안해서 내게 검색 허가 승인 같은 거 안한다.  저번 달에 아고라에서 사대강 홍보하는데 어떤 새끼가 하도 댓글로 방해해서 어떤 놈인가 보려고 공손히 준상에게 결제 서류를 올렸는데도 아직까지 전자결제 서류를 열어보지도 않은 놈이다.

 아이 씨발 내가 국정원인데 네이버로 검색해야되?   동수는 4대강 댓글을 쓰는 척 하면서 열심히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동수의 노력도 헛되이 주신혜라는 이름 세 글자는 며칠후 회사에서 누구나 알게 되었다.

       "4대강 준설 모래 비지니스:  건설사들 조직적으로 준설 모래 빼돌려.  국정원도 관련된 증거 포착되 -주간 독립신문 주신혜 기자"

단지 국정원이 아니라 건설사로부터 돈을 받은 직원 이름이 세명이나 공개 되었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원장님 부터 이번 일로 국정원의 이미지가 위험해졌다며 개인별 댓글 할당량을 두배로 올리는 비상 대책을 취하시는 바람에 동수는 더 바빠지게 되었다.  

 걸린 사람은 세사람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또 돈을 받은 부서장도 노심초사였다.  최부장은 원장님께 이번 건이 커져봤쟈 회사 이미지만 나빠지니 이를 정권을 위협하려는 북한의 공작으로 전환하자고 건의하였다.   하지만 저번에 북한에 돈 주려다 금액이 맞지 않아서 북한 쪽에서 까발리는 바람에 원장님이 북한 이야기만 듣고 최부장 조인트를 깠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와중에도 동수네 부서는 조용했다.  동수는 그게 불만이었다.  준상이가 분명히 건설사 돌아다니면서 돈을 받은 것을 아는데 저 새끼는 어떻게 빠져나갔지.   분명히 준상이 주기자를 구워 삶은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구워 삶았을까?   동수는 출근해서 주신혜라는 이름을 검색엔진에 치고 주신혜의 뒷조사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주신혜 기자는 이 바닥에서 꼴통으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저번에 상전그룹에서 검사들 용돈 주던 것을 까발린 것이 대표작이었다.   독립군 후손에 타협도 모르고 정직하게 쓰는 모양이었다.  이런 여자가 어떻게 준상이를 봐줬을까?  여기에 분명히 준상의 비밀이 있다.

 "선배님, 주기자를 어떻게 구워 삶으셨어요? "

어느날 수금을 끝내고 강남의 교통길 체증을 겪으면서 동수가 물었다.  이 즈음에는 그래도 차가 막힐 때는 동수에게 운전대를 맡길 만큼 신뢰 비슷한 것도 좀 있었다.  그래 이판사판이다.  정면 승부다.

 "알아서 뭐하게?"

 "아이 선배님, 저도 나중에 혹시 배워서 써먹을 수 있을까 해서요."

 동수는 비굴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넌 안돼 임마.  나같은 미남만 되는 거야. "

 "..... 개새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동수는 비굴하게 웃었다.

" 흐흐흐 선배님 참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

4.

이즈음 강실장은 아직도 알아낸 것이 없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임시직 기간인 1년도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동수는 더이상 까발릴 것이 없어 주신혜 기자와의 관계가 수상하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강실장은 주기자 이름을 듣자 눈을 반짝이면서 관심을 보였다.  동수는 심증뿐이니 좀 도와 달라고 한다.  강실장은 가방을 내준다.  그 안에는 도청장치가 들어있었다.

"어떻게 쓰는 데요?"

"설명서 봐 이새끼야."

사실 강실장은 영어로 된 매뉴얼이 부담스러웠다.

 도청 장치를 받은 동수는 이것을 차안에 달아둔다.  녹음이 메모리 카드에 되고 매주 메모리 카드를 갈아끼우는 구형 모델이었다.  동수는 매일 저녁 녹음된 내용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보통 준상이가 차에서 듣는 중국 노래가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계속 그 노래를 들으니 동수는 외워버릴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음악 소리 중에 귀가 번뜩이는 통화 내용이 있었다.

"아니 황부장검사나으리께서 왠일이세요?   그거때문에 전화하셨다고요?  에이 검사님도.  아이 선수끼리 왜 그러세요.  뭐 천억이 큰 돈이라고 대삼전그룹에서 버는 돈 발톱에 때도 안되쟎아요. "

 실실 쪼개고 있었지만 동수의 귀에는 매일 듣는 준상의 목소리에 서린 긴장감이 보였다.   동수도 침대에 누운 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준상이 발톱을 드러내었다.

"검사나리가 호랑이라고 칩시다.  난 늑대요.  호랑이랑 늑대는 안싸우는 거 알아요?  그냥 초식동물들 잡아먹으면 되지 육식동물들끼리 싸우다가 다치면 좋을게 뭐요?"


5.

삼전그룹이 연루된 것 같다는 동수의 보고에도 강실장은 평소처럼 더 알아보라고만 할 뿐이었다.   젠장 뭘 더 알아보라고.  강실장이 열어준 계정 덕분에 동수는 인물DB에 접속할 수 있었다.  거기서 주신혜 기자는 국가 안보에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있었다.  누구를 만나서 뭘 하는지가 1주일 단위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 미친척하고 그냥 한번 주신혜 기자를 만나볼까?  그러다가 준상이가 알아채면 어떡하지?  동수는 궁리하기 시작했다.  애이 어차피 나에게 더이상 물러설 곳이란 없었다.  동수는 그냥 인물 DB에 있는 주기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주기잡니다. "

     "서준상 선배가 선물을 전하라고 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

     "시간과 장소를 말하세요."

예상치 못한 신혜의 대답에 동수는 허를 찔렸다.

     "어...  6시에 강남역 1번 출구 어떠세요?"

     "알았습니다. "

전화는 뚜뚜 거리면서 끊겼다.  

6.

"물건은요?"

"네?  여깃습니다. "  동수는 쇼핑백을 내밀었다.  쇼핑백안에는 백화점에서 산 목걸이가 들어있다.  동수는 일단 직장 선배의 눈에 들기 위해 선배의 여친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말도 안되는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주신혜기자는 남의 눈을 의식하더니 쇼핑백을 받아서 그냥 가려한다.

 "저...  신혜씨 혹시 준상이형에게 전할 말씀 없으세요?"

 "확인해보고 나중에 연락주겠다고 전하세요. "

  분명히 뭔가 있었다.  주기자와  준상 사이에 거래가 있다.

7.

 언제나처럼 화창한 주말오후의 독서실엔 예전의 동수처럼 한심한 인생들이 죽치고 있었다.  동수는 다시는 저런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메모리카드를 노트북에 꽂았다.  아이 씨발.  또 그 노래다.  이제 외울려고 한다.

 "동 쉬파똥 똥파똥파똥"

흘러간 중국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준상은 변태가 분명했다.   한참 듣고 있는데 음악소리가 줄어들더니 준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기자님 휴대 전화로 연락 하시면 안된다니까요?"

 "네 목걸이요?  하하하 그건 제가 기자님을 사모해서."

 능구렁이 같은 준상.  순간 당황했지만 얼버무리고 넘어가려한다.

 "아니요 조금만 기다리시라니까요?  진짜 있지요."

 한 5초간 음악이 멈춘다.  그리고 또다시 들려오는 지긋지긋한 노랫소리.   순간 동수의 눈앞에 번개가 치고 지나갔다.  저거다.  동수의 머릿속에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었다.  뭔가가 음악 CD안에 숨겨져 있고 그것을 주기자는 기다리고 삼전그룹은 그것을 막으려 하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동수는 확신했다.

8.


 동수의 보고를 받아든 강실장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동수는 초조해졌다.   어느새 정규직 전환까지의 시간도 한달이 채 남지 않았다.  지금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끝장이다.   차라리 내가 직접 CD를 검사해볼까?   그런데 놀랍게도 준상과 보낸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준상은 내가 CD와 단둘이 있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동수의 생각은 확고했다.

 잠시 후 강실장은 금고를 열더니 가방을 하나 꺼내서 동수에게 주었다.

 "열어봐"

 그안에는 권총과 실탄 3발이 들어 있었다.

 "CD를 찾아서 니 생각을 증명해라.  만약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준상을 쏴도 좋다. "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동수는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겨드랑이의 권총이 방망이처럼 크게 느껴졌다.

 "동수야 뭐하냐 가자?"
 언제나처럼 준상이 싱글벙글하며 나타났다.


9.

 차안에는 언제나처럼 똑같은 중국 노래가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선배님 이게 제목이 뭡니까? "  침묵을 깨고 동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승부를 봐야한다.  준상 너를 잡고 나는 정규직이 될 거다.  다시는 고시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임마 너 영웅본색도 안봤냐?  그거 주제가다. "

 "아 그렇군요.  영웅본색 제목은 저도 들어 본 것 같습니다.  영웅본색이 뭔 말이죠?"

 "영웅은 원래 여자를 밝힌다는 말이지.  동수야. 잘나가는 한국 남자들은 말이다.  돈, 여자, 자식 교육 세가지로 다 설명이 된다.  이 중에 약점 없는 놈은 없다.."

 "ㅋㅋ 그렇군요.  그런데 이 CD에 다음 곡은 뭔가요? "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동수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준상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차안에는 두마리 육식 동물이 풍기는 긴장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동수야.  니 주기자 만났나?"

순간 동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이참 선배님.  선배님이 주기자랑 사귀신 다길래 제가 선배님께 아부할라고 선물을... 해해."

 동수는 권총을 뽑기 위해 필요한 순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른 손으로 양복 사이에 손을 집어 넣고 권총집에서 똑딱이 단추를 때고 손바닥을 탄창에 대고 검지 손가락은 방아쇠 사이에 넣고.

 준상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차를 한적한 국도 변에 세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 어디를 가는 거지?

 "내 눈을 똑바로 봐라 동수야.   강실장이 시키든? "

 "선배님 무슨 말씀이신지?"

 동수는 어떻게 하면 총을 뺄 수 있을 지 생각했다.  아니면 그냥 펀치를 날릴까?  동수도 입사를 준비하면서 실전무술이란 무술은 다 배워두었다.  이런 대머리 중년 남자는 제압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준상 당신이란 인간이 싫기도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것은 아니야.  나도 물러 설 곳이 없다고.

 동수는 순간적으로 총을 빼들었다.  그와 동시에 준상은 불이 붙은 담배를 준상의 얼굴에 뱉었다.  앗 뜨거.  순간적으로 동수가 눈을 감은 순간 준상이 총구를 붙잡고 밀쳐냈다.  동수는 오른 손이 밀쳐내지는 것을 내버려두면서 왼손으로 순간적으로 준상의 오른팔을 잡아 꺾었다.  동수는 왼손잡이였다.  동수의 힘이 세기에 천천히 총구를 준상의 가슴 쪽으로 가져간다.  준상의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동수야 이러지마 새끼야.  너도 끼워줄 께.  100억. 아니 500억 줄께. "

 순간적으로 동수는 놔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왔다.  준상은 너무 위험하다.  게다가 천억 과연 받아낼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선배님. "

 동수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준상은 동수를 잡고 마지막으로 말한다.

 "동수야. 인제 정규직 되서 좋냐?  바보새끼야.  너 처음부터 합격이었던 거 모르지. 강실장이 장난친거야."


10.

총소리가 난 후 두대의 검은색 세단이 나타나기 까지는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30초?   미행당하고 있었나?  강실장은 수고 했다는 말과 함께 총과 CD를 가지고 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부지런히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북한이 국정원에 침투시킨 산업스파이가 삼전그룹의 핵심 기술을 빼돌려 국제 암시장에 내놓으려다가 국정원이 막은 사건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피해 예상액은 무려 30조에 달했다.  중간일보에서는 국정원에 북한의 스파이가 잠입해있었다며 지난 종북 정권의 안일한 인식으로 초유의 안보위기가 유래했다고 연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동수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강실장이 곧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주말에 동수는 영웅본색을 다운받아서 보았다.   준상은 주윤발을 흉내내고 있었다.  옷차림부터 행동거지까지.  주윤발이 총든 적의 얼굴에 담배를 뱉어서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을 볼 때면 실소가 터져나왔다.

"미친 새끼 영화랑 현실도 구분 못하고.  으하하하"

몇 주 후 태국에서 온 소포가 주기자 앞으로 전달된다.  봉투안에는 "소돔에 의인이 한명만 있다면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라는 메모와 함께 상전그룹의 회장이 대선후보에게 돈을 건네라는 내용의 도청 테잎이 들어있었다.

주기자는 비자금 테잎을 인터넷에 유포 후 상전그룹으로 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다.  몇년에 걸친 지루한 공방 끝에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갈 무렵 실형을 받는다.  상전그룹은 처벌 받지 않고 공소 시효를 넘긴다.

11.

동수는 강실장을 도청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지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열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실장의 약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호기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강실장의 포인트는 돈, 여자, 자식 교육 어떤 것일까?

준상이 가고 난 후 정규직 사수는 아직 배정 받지 않았다.  동수가 부장에게 이야기 했더니 부장은 정규직의 접근 권한을 동수에게 임시로 주었다.  거기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동수는 강실장이 자신과 이야기 할 때 쓰던 개인 번호를 복사하여 강실장의 문자 메시지를 함께 보았다.  어느날 르노아르 호텔 3시라는 이상한 문자가 왔다.  르노아르 호텔은 경기도의 러브호텔이다.  동수는 분명히 불륜일 거라고 생각해서 몰래 따라간다.  모텔 주차장에서 도청장치를 켜고 대화 내용을 엿듣는다.



"강실장 나 회장님한테 완전히 깨졌어.  당신이 물건 회수 했다며.  어떻게 된거야?  당신 진짜 이렇게 무능하게 살거야?  "


"김팀장님은 핸드폰 전화도 다 듣고 위치도 다 보는데 몰랐는데 내가 무슨 재주로 이걸 아냐고요. "


"아 젠장 방심했어.  이 새끼가 동남아에서 현지 전화쓰는 바람에 까맣게 몰랐네. "


"그래도 주기자가 터트리는 것은 막았어야지."


"아 그 미친 년을 어떡해 막아. 우리가 그 년 성깔을 아니까 회유는 생각도 안했고 일단 기사나가는 것만 막았지. 그리고 그냥 사고 처리할라고 결제올리는 와중에 그년이 눈깔이 뒤집혀 트위터에 올린거야.  지금 일 생기면 더 의심받으니까 작업 급하게 중단하느라 또 난리나고.

하여간 이번 건 때문에 회장님 심기 안좋으니까마무리 확실히 해. 알바 건도 회사내에 소문안나게 처리하고. "


"걱정하지 마십시요.  개도 뇌물 비리에 연루되서 자살하는 걸로 내사과에서 진행중입니다."

동수는 순간 자기 이야기임을 직감하고 주의를 집중하느라 뒤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그림자를 신경쓰지 못한다.

"너무 뇌물 비리 자살 자주 쓰는 거 식상하니까. 내가 생각해봤는데 정규직 못되고 임시직 짤린 것 비관 자살로 하면 어떨까.  20대 비정규직 실업 문제.  요즘 이런 거 사회문제 쟎아.  이런 걸로 중간일보에서 기획기사도 함께 터트리고."

"아 그거 참신하네요. 역시 김팀장님 센스는 ..."

그 다음 이야기는 동수가 목이 졸려 미처 더 듣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죽는 장면을 모텔 cctv로 보면서 강실장과 김팀장이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그것은 유서에 들어갈 문구를 뭘  쓰느냐와 같은 어쨌든 당시의 동수에게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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