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0일 수요일

우정과 환대의 공간


시골에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갯벌이 있는 어촌 마을 쪽에 땅값이 싼곳에 땅을 구매한다.
(초기 구매는 한 개인이 전체 땅을 구매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유는 아래에 나온다)

좌파 지역조합을 만든다.
입주자는 토지나 건물을 임대하게 된다. (토지는 조합 소유)
조합 화폐를 만든다. (금태환 화폐로)
입주시에는 지역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신규 입주자를 결정한다.
공동 육아 및 초중등 교육을 대안학교에서 실시한다. (핀란드식)
대학을 갈 사람은 검정고시나 SAT등을 통해 유학을 가도록 하고 대학에 가지 않을 사람은 고등학교 때 직업 교육을 잘 시킨다. (빵을 하나 구워도 르꼬르뎅 블루 수준으로)
지역안에서는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하고 마을 입구에 주차장을 만든다.
지역안에서는 자전거와 필요에 따라 소음이 적은 전기자동차, 카트등을 허용한다.
농사나 어업을 통해 먹는 것을 해결하고 특히 농사는 유기농으로 하도록 한다.
예술가, 교사, 사서, 농민, 어민, 프로그래머, 의사 등의 직군을 전략 유치한다.
먹고 남는 고부가가치 안전 식품은 생협을 통한 인터넷 판매, 프로그래머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개발 판매, 관광 산업을 통해 외화를 획득한다. (이경우 외화는 원화도 포함)
조합의 운영은 선출직 의원에 의한 의원내각제 방식으로 한다.
노천카페, 댄스홀, 예술회관등을 조촐하게 만든다.
입주자는 지대의 형태로 직접세를 내게 된다. (지대가 소득에 비례 누진적용으로 40%까지)
문제가 있을 경우 조합원의 투표에 의해 조합에서 입주자에게 더이상 임대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 입주자를 퇴출시킨다.
태양광발전으로 마을내 전기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생태마을을 만든다.

현재 계속 구상중.
우석훈박사님의 말씀에서 초기 아이디어를 얻음.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그들이 말해주지 않는 진실 #5 - 진보보수좌파우파민주주의독재정치자본주의공산주의

사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문제는 무식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기가 무식하다는 점을 모른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런 이야기 하면 사실 선진국애들도 무식하다라고 반론하는 분들있다. 답변은 두가지. 일단 미국은 선진국아니다. 두번째 프랑스나 북유럽에서는 시스템이 어느정도 합리적이니까 일반 사람들이 관심없어도 어느정도 돌아간다. 그리고 그 사람들 자기 이익에 있어서는 굉장히 똑똑하다.   )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가 무슨 뜻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나 될까? 그런데도 대부분 무슨 뜻인지 대충 안다고 생각할 거다. 그게 문제다. 조지오웰의 1984를 읽어보면 주인공의 직장은 국어사전 편찬하는 정부기관이다. 이곳이 미래 권력의 핵심이다. 왜 그럴까? 바로 개념을 장악하면 생각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가 녹색 뉴딜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건설사업을 녹색사업이라고 하면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되지만 지배층이 밀어 붙이면 그냥 이 사회에서 그냥 통용된다.  텔레비젼, 뉴스 몇가지 채널ㅁ만 장악하면 녹색사업이란 말을 유통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녹색사업이란 말이 언급되는 횟수가 건설사업은 녹색사업이 아니라는 말이 언급되는 횟수보다 10배이상 커지면  그냥 녹색사업이란 용어는 무의식 세계로 먹고 들어가게 된다.

"환경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외치면
" 그래서 녹색 뉴딜하잖아!" 라고 답하면 순간 어이가 없어진다. 어이가 없어 답을 못하는 순간 지는 거다.

또하나의 예가 바로 빨갱이라는 단어이다. 노무현은 빨갱이다. 이런 소리 한번씩 들을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의 무지함에 좌절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이 글 마지막에 설명하기로 하자.

어쨌든 서론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서 진보 보수 좌파 우파의 개념부터 살펴보고 이게 왜 지금 우리의 사고를 방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진보 - 현재 방식이 좋지 않으니 바꿔보자. 혹은 좋은 게 나왔으니 바꿔보자.
보수 - 뭐 인생 별거 있냐. 그냥 유지하자. 혹은 좋은것이 좋은 건지 검토해보고 천천히 천천히 바꾸자.

좌파 - 다른 사람이 괴로워 하면 그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다. (예수같은 사람)

우파 - 다른 사람이 불행한 것은 그 사람 인생이고 선택의 결과이다. 나하나 잘하기도 힘드니 일단 자기 일이나 잘하자. 그리고 우리가 무어길래 다른 사람 삶에 관여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밥은 먹고 다니냐?

참고로 극우파 - 그냥 나쁜 놈들이다. 조폭이라고 생각하면 유사하다. 내가 살기 위해 네 것을 빼앗아야 겠다.  약자는 착취하라고 있는 거다.  동물의 왕국과 인간의 왕국은 사실 비슷하다.  (극우파가 긍정적일 수 있는 부분은 이런 세계관에서 나온다.  우리가 약하면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사정없이 잡아먹을 것이므로 우리의 군사력 국력이 남보다 약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논리)

극좌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희귀동물 보기보다 귀하므로 생략.

자본주의 - 경제체제로서 시장에서 생산과 분배를 관리하는 제도
공산주의 - 경제체제로서 국가가 생산과 분배를 관리하는 제도
봉건주의 - 경제체제로서 영주가 생산과 분배를 관리하는 제도
민주주의 - 선거로 국민이 대표를 뽑는 제도
독재주의 - 당이나 개인 지도자가 알아서 대표를 뽑는 제도

예를 들어 프랑스나 북유럽은 좌파정권이고 자본주의이고 민주주의이다. 좌파 정권하면 공산주의 생각하지만 별로 연관은 없다. 옛날 소련과 동독은 좌파정권이고 공산주의이고 당독재주의이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우파정권이고 자본주의이고 민주주의이다.


(좌파 우파 설명을 들어보면 좌파가 좋은 것 같겠지만 꼭 그런것도 아니고, 사람이 예수가 아니기 때문에. 좌파의 길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보통 한 100명 중에 한 명 정도 있다고 보면 된다. )

보통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것은 좌파냐 우파냐 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구소련같이 좌파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곳에서는 우파가 진보고 좌파가 보수다. 우리같이 우파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곳에서는 좌파가 진보고 우파가 보수다. 진보라는 말은 멋있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냥 바꾸자는 거다. 그래서 사실 진보신당이라는 말은 당이름으로는 좋은 것은 아니다. 바꾸는 당. 바꾸자 당. 이런 뜻인데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바꾸자는 컨텐츠가 없으면 심지어 극우파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당이름이다.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가치의 예인 무상의료 무상교육 정책을 보면 이들이 좌파 정당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좌파라는 말을 못쓴다. 거기에 우리 사회 비극을 보는 열쇠가 있다. 우리 나라는 분단국가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정권이 전쟁을 한번 치뤘다. 전쟁도 아주 더럽게 치뤄서 흔히 우리가 영화로 보는 아프리카에서 동족간 대량 살상 하듯이 무식하게 전쟁을 했다. 슬픈 것은 이나라 사람들이 공산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철학이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자본주의 대표인 미국과 공산주의 대표인 소련이 분할 통치하면서 무식한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죽고 피를 본 후 이제 이성적인 사고에 앞서서 집단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감정적인 두려움이 있다. 이를 이용하여 정권 집단에서는 공산주의와 좌파를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빨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어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한다. (사실 공산주의와 좌파는 조금 연관이 있다. 다른 사람이 굶거나 괴로워 하지 않기 위해서 (좌파적인 목적) 국가가 공동으로 생산하여 골고루 나누어 주는 제도 (공산주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니 좌파가 지향하는 방향이라면 공산주의 제도는 이를 이루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인 셈)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공공의 적 공산주의를 이용하여 아주 쉽게 좌파적인 정적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빨갱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문제인 것은 공산주의 일당 독재 방식을 택했던 것이 결정적인 실수가 아닐까 한다. 좌파적인 삶의 양식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가장 현명한 전문가 집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절대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구현한 것인데 사람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부패하게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민주주의가 정치체계로 그나마 좋은 것이 시스템 적으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파적인 가치관을 민주주의적으로 구현한 사민주의가 현재 인류의 발전수준에서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리에게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보통사람들에게 학교시간에 배웠던 것, 대학은 가야하니 그냥 지원한 곳, 취직해보니 실생활에 전혀 도움안되는 것 등이 아닐까 싶다. 굉장히 합리적인 한국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돈낭비 처럼 느껴질거다. 그런데 인문학이 없다면 행복해지는 데 문제가 생기고 그 첫번째가 바로 올바른 언어의 개념 상실로 인한 방향감각 상실이다.


인문학은 잉여학문이다. 하지만 사회전체로 보면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가 소수의 인문학자를 지원하는 것이 옳으나 인문학자의 역할이 때로는 국가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델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문학자는 국가에서 지원하고 소수의 인문학자는 시민사회에서 자체 부담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식이라고 본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인문학자에게 시민사회가 비용을 지불할 것이냐.  가장 역사적으로 오래된 형태는 책을 사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얼마나 책을 읽느냐가 이 사회의 건강성을 가르키는 한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진실 #6 - 한국 사람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

우리 나라 사람은 영어를 못하기로 유명하다.
프랑스도 어지간히 못하고 못하는 나라들이 많지만 억울한 건 우리는 그런 나라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영어에 목매달면서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말이 영어와 너무 달라서? 일본 사람들 같은 경우는 원체 발음수가 제한되어 있어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원래 한글 자체가 거의 모든 발음을 표현할 수 있게 과학적으로 디자인 되어 있기 때문에 음성학적으로는 원래 다된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영어 못하는 사람을 그냥 미국에 한 1~2년 (나이에 따라 틀리겠지만 아이들은 6개월, 너무 나이든 어른은 어렵고, 대학생은 한 2년? ) 같다두면 대부분 영어 잘한다.

그럼 우리가 초등학교부터 거의 15년을 투자해도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안타깝게도 사실 별로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실제 접하는 사람은 (생활속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어는 단지 시험용이다. 그 시험자체도 사실 영어가 중요하기 보다는 워낙 좋은 일자리는 적고 일할 사람은 많은 데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될 뿐이다. 영어는 사실 도구이고 도구는 목적에 의존한다. 그런데 목적이 없기 때문에 (자막없이 영화보기 정도? ) 영어가 발전이 없는 것이다.

나는 외국에 나가 본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는 최고로 도달한 사람이다.(토플 650? GMAT 730) 그럼에도 영어로 된 자료 읽는 것 외에는 대부분 쓸일이 없다. 가끔 영어로 이메일보내는 정도? 그리고 듣기는 그냥 연습해서 어느 정도 되지만 제일 안 되는 부분은 말하기이다. 발음이 아주 구리다. 그럼에도 고치고 싶은 데 고치기가 쉽지 않다. 이게 생활이 되지 않으면 고치기 힘든 부분이고 원어민 회화등을 통해 고치려고 할 때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데 비해 써먹을 데가 없어서이다.

사실 영어는 열쇠다. 아주 고급 정보들은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영어가 능숙하면 그 보물 창고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급 정보들은 정보의 속성상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효율을 향상시켜주는데 의의가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다. 지금 영어 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국가적인 자원을 다른 곳 (돈이 되는 기술 교육, 생활이 아름다워지는 예술 교육 등)에 투자하면 그 돈이 좀더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을 까 라고 생각한다.

2009년 2월 9일 월요일

냉소하지 말자 쿨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냉소하지 말자. 쿨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혼자 세상을 아는 것 같고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다같이 한 발을 내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세계가 있다. 성급하게 내 의견과 다르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다.

2009년 2월 8일 일요일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예전에 민주노동당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약을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이 좋은 정책인데 돈은 어디서 나느냐고 비아냥 거렸다.  세상 물정 없는 철부지 취급한거지.  쯧쯧 재들은 데모만 하느라고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요.  그시간에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라고 점쟎게 타이르곤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분들이 더 바보고 우리 국민들이 바보임을 조목조목 지적해준 책이 나왔다.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의 미덕은 숫자에 있다.  건설사들이 분명히 로비하고 정부돈 훔쳐가고 공무원들이 분명히 나쁜 짓하는 것 같은데 우리같은 일반인은 짐작만 할 뿐 그 실체를 알기란 쉽지 않다.  또 먹고 살기도 바쁘니까 그런 것 까지 신경못쓴다. (그런 분들이 꽃보다 남자 무한도전, 이런거 보느라 시간 보내는 거 아닐까?)  이 책은 그 행태를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결국 너무나 허망하게도 가능하다.  우리는 사실 돈 많이 쓴다.  근데 그 돈을 도로깔고 건물짓는 데 쓴다.  왜 그럴까? 복지는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안쓰고 건설은 소수에게 많은 돈을 안겨주기 때문에 소수가 정말 열심히 성취해내기 때문이다.  중간에 공무원과 정치인은 모른척해주는 대가로 챙기고.  

  정말 이책 읽으면서 이민가고 싶어졌다.  

  이런 책 왜 안 읽는 거야.  왜 하필 우리편은 이렇게 바보인거야. 


2009년 1월 30일 금요일

혁명의 계절

 큰 정치의 계절이돌아왔다.  작은 정치가 성, 가족, 직장생활과 같은 일상생활속에서의 권력관계라 할 수 있고 중간 정치가 선거와 같은 시스템하에서의 권력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큰 정치는 혁명과 같이 시스템 자체를 다시 쓰는 행위를 말한다.  피냄새가 난다.  혁명이 좋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해서 저절로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근데 왜 혁명의 계절이 돌아왔을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스팀이 빠져나가지 못할 때 압력밥솥이 폭발하는 것 아닐까?

 촛불은 뜨겁게 타올랐으나 정권은 끈질기게 저항했고 특유의 말장난으로 예봉만 피했을 뿐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 낸 것이 없다.  심지어 교육감 선거마저 이기지 못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정권은 결국 시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어청수, 강만수, 김석기로 이어지는 승진이 이것을 보여준다.  

 삼권분립이라고 한다.  행정부는 당연하고 입법부마저도 장악했다.  여기까지는 당연하다고 하다면 사법부의 투항이 조금 의외이다.  미네르바사태때나 촛불집회, 용산참사, 소고기문제 등에서 보여주듯이 사법부는 너무도 순순히 자발적으로 정권의 개로 투항하고 있다.   하지만  판사나 검사가 그 자리에 가기 까지의 사회적 필터를 살펴보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초중고때 공부는 잘했다.  엄마의 치맛바람에 과외로 내몰렸지만 옆자리 녀석보다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이 힘든 시간을 참고 견뎠다. 이 과정에서 인성은 망가졌다.  집에 돈이 많아 과외를 많이 받아 공부를 잘했을 수도 있다.  대학시절부터 고시를 시작하고 합격하기 까지 짧게는 3년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고시원에 틀어 박혔다.  20대에도 세상을 배우지 못했다.  오랜 기간 후원해주는 든든한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좋은 집안 출신일 확률이 크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판사나검사라는 사람들은 돈이 많은 집안 출신이거나(판사 검사해서 돈 많이 번것은 아니다.) 인성이 덜 발달하신 분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아닌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1000명 중에서 확률적으로 그런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이 더 출세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 5의 권력인 언론은 이미 장악당하고 말았다.  조중동은 노무현 시절을 살아남은 후 더욱 면역력이 생겨 극악스러워 졌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저무는 태양이라 한다면 상대적으로 떠오르는 태양인 방송이 정권의 낙하산 인사에 의해 장악당한 후 방송은 급격히 정권의 개가 되고 있다.  오히려 MBC나 KBS, YTN의 저항이 없었더라면 서글펐을 정도다.  나라가 망했는데 자결하는 충신이 없다면 무슨 챙피?  


  자 이분들에게 상황이 좋다.  10년만에 온 빅 챤스! 지금 챙겨두어야 한다.  이분들 크게 기획하신다. 먼저 챙기는 법부터 

1. 금산분리 완화법 - 사실 이게 대박이고 제일 공들이는 거다.  삼성 이제 성장에 한계에 다다랐다.  다음 신성장 동력은 금융이다.  금산분리 완화법만 해도 한 글을 새로 쓸 수 있으므로 패스.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은행업에 제일 좋은 점은 자기자본비율(BIS)다.  예를 들어 자기돈을 10억 투입하면 100억을 빌려줄 수 있다는 거다.  즉 10억만 내돈을 가져다 놓으면 100억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산업자본이라면 모른척 실수인 척 자기 식구 계열사에게 100억을 대출해주고 싶지 않을까? 거기다 은행은 망하게도 못한다.  은행은 먹이 사슬의 끝으로 중소기업, 중견기업을 살리고 죽인다.  은행이 자영업자 망하게 하는 거 쉽다.  삼성같은 대기업은 작은 경쟁자도 죽이고 돈필요하면 은행에서 만들어 공급하고 또 소비자금융이라 해서 사채놀이해서 좋다.  이 좋은 정도는 정말 내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냥 엄청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전국민을 세입자로 두는 집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할까?

2. 대운하 삽질 - 다들 아는거. 이거는 돈도 아깝지만 환경이 파괴된거 이거 복구도 못하는게 제일안타까울뿐. 

3. 민영화  - 뭐 왠만큼은 다들 아는거.  사실 민영화 논리를 들어보면 너무 어이가없어 어디부터 욕해야할지. 

4. 비정규직화 - 이건 경제적 이익도 있지만 천민들이 반항하지 못하게 하는 정신적인 게 크다.  

그리고 반항하지 못하게 하는법이 따른다. 

1.  방송장악법

2.  집시법 개정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바보 취급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접받고 싶은가?  투쟁하라.  그리고 승리하라.  이 건 쉽다.  그런데  혼자서는 쉬운데 만약 100명이 있는데 그 중에 70명이 투쟁하면 이기는데 만약 10명만 투쟁했다 그러면 지고 투쟁한 사람은 죽는다고 해보자.  그럼 어떻게 될까?  여기서 선진국과 후진국이 갈린다.  죄수의 딜레마다.  나 혼자 살겠다고 조용히 있으면 (어차피 100명 중에 90명은 조용히 있는데 나혼자 설칠필요 있나?)  우린 진다.  나선 사람만 불쌍한 거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연대가 살아있으면 자신있게 함께 한발을 내딛을 수가 있다.  


   이 싸움은 힘들고 승리할 확률도 적다.  그래서 이 싸움은 똑똑한 분은 안 한다.  그런 분들은 그냥 시스템에 잘 적응해서 잘 먹고 잘 살다 그냥 죽는다.  인생 별거 있어?  그래서 바보들만 이 싸움에 뛰어 들며 그래서 세상은 바보들이 바꾼다.  

  모르겠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혁명 안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4.19나 6.29처럼 평화롭게 안되면 혹 또 꺾이면 이 다음에는 산적이 출몰할지도 모른다.   왜 산적이 출현하냐면 말이다.  아까 위의 시나리오에서 사람들이 서로 못 믿었도 반항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  잃을 것이 없을 때.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zombie라고 하드라.  좀비 영화는 잃을 것이 없는 하층민들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공포를 보여주는 예는 타워팰리스 사는 사람이 택시에 타서 타워팰리스  앞에서 내리지 않고 근처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다.   혹은 밤길 걷다가 조선족 남자 서너명이 떠들고 있으면 공포심을 느끼고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  당신 이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사실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우리끼리 싸울 필요도 없다.  뭐 토달지 말고 컴퓨터 끄고 거리로 나와라.   키보드 워리워와 대접받는 사람의 차이는 입만 살았느냐 행동도 살았느냐의 차이다.  당신이 유일한 희망이다.  나도 얘기 재우고 나갈거다.  

 혁명은 시작됐다. 


행복자전거당 당수 
www.happybicyclepart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