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1일 수요일

빈센트의 잃어버린 그림

 첫수업

그는 미술관에서 이쁜 여자를 꼬시고 있다가 전화를 받는다. "교수님 조교인데요 내일 수업이 1시인데 강의계획서를 보내주세요". 

"뭐 난 교수 아닌데? 어디 대학이라고? ㅌㅌ대? 무슨 소리야 전화 잘 못거셨소"

젠장 엄마가 나 몰래 임용시키셨구만.  내가 싫다고 그랬는데. 뭐 그리 시시한 대학에 내 돈내면서까지 다니나. 

"아 교수님이신가보네요. 저는 ㅌㅌ 미대에 다녀요." 

"아 제가 거기 고고미술사학과에 새로 부임한 이시준이요."

그때 이쁜 여자가 교수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교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어이 조교. 강의계획서는 니가 알아서 써라. 조교가 돈받고 하는 일이 뭐냐? 그런거라도 해야지. 내일 수업은 어디야?" 


이튿날 ㅌㅌ대학에 1967년 Mustang이 등장한다.  시끄럽기만 하고 차는 나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씨끄럽다고 인상을 쓰고 욕한다. 이시준은 투덜 거린다. 니들이 예술을 아냐. 포르쉐나 알지. 이게 포르쉐 10대 값이다.  


강의시작은 오래된 편지를 파워포인트에서 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정신병원을 나온 후 오랬동안 가보지 않았던 The Hague를 가보고 싶었다. 너가 준 돈이 물감을 사고 얼마 남지 않아 잘 계산을 해서 떠났으나 The Hague 기차역에서 Auvers-sur-Oise로 가는 기차표를 살돈이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어떤 사람에게 내 그림 몇 점을 주고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그 사람 연락처를 지갑에 넣어두었으나 잃어 버리고 말았구나. 역시 나는 사무적인 일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돈을 갚을 길이 없어 미안하구나. 나의 그림이 팔린 적이 있다면 그 가치를 좀더 알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언제쯤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너에게 자꾸 손을 벌리기가 미안하지만 여비가 떨어져서 그러니 아래 주소로 10쉴링을 급히 보내주기 바란다.  1889" 


이것은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는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되어 있지 않고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창고에 고고미술사학 전공 연구자들에게만 열람이 허용되어 있지.  내가 초명문 NYU의 고고미술학계의 전설 xx 교수밑에서 박사를 받았기 때문에 나도 볼 수 있었던 거야.  여러분은 교수 잘 만난 덕분에 이렇게 편히 볼 수 있는거야. 

이 이야기는 빈센트의 잃어버린 그림이라 불리며 현대 미술사의 가장 큰 미스테리라 불린다.  자네 고호 그림이 얼만줄 아나? 최소 100억에 걸작이면 1000억은 문제도 아니야. 1990년도에 팔린 이 그림은 850억에 팔렸는데 지금돈은로는 1800억 정도 하지. 이그림은 반고흐의 걸작도 아냐.  그 말은 그 잃어버린 그림이 최소 500억 정도 가치가 있다는 거지. 스토리가 구구절절해서 그림만 적당하면 2000억은 문제없지 그래서 수 많은 고고미술학자들이 빈센트의 숨겨진 그림을 찾기 위해서 The  Hague의 벼룩시장, 여인숙, 술집등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 그림을 산 사람은 헤이그에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 미술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반고호가 불쌍해서 돈을 주었다. 원래는 그냥 주었으나 반고호가 주장하여 그의 그림을 담보로 받고 연락처를 주었다. 빈센트가 서명을 그림에 하려고 주머니를 뒤졌으나 펜이 없어 그림에는 서명이 없다.  아쉬운 거지. 만약 빈센트가 거기 서명만 했으면 그 그림값은 1000억에서 2000억으로 뛰는 거야. 그 사람은 운이 없었던 거지. 

그림은 화장실에 걸어두었으나 부인이 너무 스타일이 이상하다면서 싫어했어. 그가 죽고난 후 부인은 그 그림을 1907년 헤이그의 무슨 스트리트에서 팔았지. 


그런데 말이야 우낀게 뭔지 알아? 사실 내가 고고미술학에 무슨 관심이 있었겠어. 하도 사고를 쳐대니 집에서 강제로 유학을 보낸거야. 한국에서 챙피하다면서. 뉴욕대 고고미술학과 박사과정 경쟁률이 얼만지 알아? 0.7이야.  그렇게 학비도 비싼데 누가 비싼 돈 내고 뉴욕에서 고고미술학 박사 하려고 하겠어? 다 돈 많은  미술상 아저씨들이 그냥 취미로 따는 거야. 거기 별의별 인간이 다와. 대머리 유대인 미술상이 한명 나랑 박사과정 동기였는데 말야. 그 인간은 도난당한 장물이나 가짜 그림 유통시키는 사기꾼이야. 그 아저씨네 파티에 가면 항상 비키니 미녀들이랑 놀 수 있어. 나도 거기서 그냥 맨날 파티하고 놀았지. 아 내가 돈은 많아.  

야 니들 돈없으면 그림 그리지 마. 내가 아는 사람중에 제일 그림 잘 그린 사람은 고호였지만 그는 한장도 못팔고 죽었어.  돈 없는데 그림 그리려면 나처럼 돈많은 후원자가 필요해. 

이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이 분개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성추행발언으로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말이야. 내가 거기 박사로 있으니 논문은 써야하쟎아. 근데 내가 뭘 알아? 근데 헤이그 하니까 뭐가 떠올라? 

어이 거기 이쁜 학생, 헤이그 하면 떠오르는 거 없어?

지적받은 학생이 기분나쁜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몰라요. 헤이그하면 헤이그 특사밖에 몰라요."

옆에 학생은 성추행 신고 메일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취, 한국사람은 헤이그 하면 헤이그 특사지. 그래서 내가 헤이그 특사가 간 년도를 알아보니 1907년도야. 그리고 이게 헤이그 지도인데 

화면에 헤이그의 구글맵이 뜬다. "여기가 그림을 판 ㅌㅌ 스트리트인데, 여기가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당시 이준열사 일행이 묵었던 곳이야."

두 곳의 위치는 걸어서 10분거리. 

기분이 쎄하지. 그래서 내 박사논문 제목이 "The lost masterpiece of Vincent Van Gogh"야. 원래는 The lost painting였는데 지도교수가 자꾸 masterpiece로 하자는 거야. 내가 따졌지. 보지도 않은 그림이 masterpiece인걸 어떻게 아냐. 그랬더니 학계도 유튜브처럼 관심을 먹고 산다면서 이게  academic marketing이래. 

그럼 내가 박사 논문에 쓴 게 뭐냐.  고호의 그림을 산 사람은  헤이그 특사로 갔던 사람중 한명인 이위종이다. 그는 고종황제의 명을 받고 이상설, 이준과 함께 헤이그에 왔다. 한국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던 이상설, 이준과 달리 그는 이미 프랑스, 러시아에서 오랬동안 지내면서 서양문물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이위종은 프랑스에서 공사관 서기생으로 주재할 때 유럽의 명문 사관학교인 프랑스 생 시르 육군사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정규 졸업했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냥 한국사람이면 헤이그 특사라 그런거지. 그냥 막 우기면 돼. 개들도 몰라. 100년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헤맸는데 왜 못찾았겠냐. 첫째, 그림을 산사람들이 현지인이 아니어야해. 현지인이었으면 진작 찾았겠지. 둘째, 그림을 산 사람들이 그게 고흐 그림이 얼마나 비싼지 모르는 사람들이어야해  그래서 내가 구라를 좀 쳤지. 한국사람들이 서명도 없는 고흐 그림을 어떻게 알아보겠냐고. 그때 특사로 왔던 한국사람이 사고 바로 그 동네를 떠나서 지금껏 못찾은 이유라고.   그랬더니 다들 좋아하면서 박사 주더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천재인것 같아. 그런 기막힌 생각을 해내다니. 내가 그때 영어 대필해주던 애한테 얼마나 작업을 걸었었는데. 어휴. 


그런데 말이야. 다들 아나? 이준 열사는 그 다음날 죽어버린거 알아? 자살이라고도 하고 병사라고도 하는데 기분이 쎄하더라고.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 뭔 곳까지 가서 생고생하다 죽었는지. 니들 우리 집안에 왜 돈이 많은줄 알어? 우리 고조부가 친일파였어. 뭐 named는 아니고 시시한 역관에 무역 쫌 했는데 말야 그래도 3대가 평생 쓰고도 다 못 쓸 돈을 벌었지.  우리 고조부 유언이 뭐였는지 알아? 니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뭘 새로 하려고 하지 마라. 그래서 우리 부모님의 유일한 할 일은 빌딩의 월세를 수금하는 것이야. 할일이 없으니 일부러 월화수목금요일에 모두 다른 곳에서 현금으로 받는다.  우리가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잘 차려입고 돈 수금하러 다니는 게 일이야. 돈 수금하고 나면 점심시간인데 할일이 없네? 뒷산에서 심심해서 골프나 치려고 골프홀을 3홀 파고 또 파고 하다 보니 18홀 골프장이 생겼네. 거참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된다더니.  뭐 오늘은 첫날이고 하니 이정도 하고 끝내쟈고. 


집안에 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몇 학생의 눈빛이 바뀐 것 같기도 했지만 착각일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학재단이 썩어서 돈 내고 교수 된 놈이 또 나타났다면서 욕하면서 강의실을 나갔다. 


1등석

"아이씨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열심히 살어. 이건 내 캐릭터가 아닌데."

모스크바로 가는 대한항공 1등석 비행기안에서 시준은 투덜거렸다. 

시작은 지도교수가 보낸 이메일에서 였다. 그는 이위종의 가족이 아직 생존해 있다면서 그의 가족을 만나서 고흐의 그림의 흔적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시준은 내가 왜 가냐면서 항의하였지만 교수는 지금 너의 논문이 통과가 안되고 있다. 증거가 부족해서이다. 너 졸업할려면 뭔가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뭐 그깟 학위 안받아도 그만이지만 교수의 마지막 말이 안스러워 그냥 가기로 하였다. 교수는 자신의 펀딩이 끊겨서 러시아까지 갈 여비가 없다면서 너는 돈 많으니 니가 가서 서 연구하는 것이 노블레스오블리제라고 하였다. 그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잘난척 하던 교수가 부탁하는 것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약해져서 승낙하였다. 거 무슨 돈도 안되는 학문을 하겠다고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시준은 이해가 잘 안된다. 

시준은 교수가 보내준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이위종은 1906년에 러시아 귀족의 딸 엘리자베타와 결혼했다. 이위종의 후손들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으며 이위종의 둘째 딸 니나의 슬하에 아들 바실리비치(작고)와 딸 류드밀라 예피모바가 있다. 류드밀라 예피모바에겐 타치아나와 율리아 피스쿨로바 두 딸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아들을 두고 있어 이위종의 후손은 모두 다섯명이 현재(2020 8.) 생존해 있다. 

마지막에는 주소하나가 적혀있었다. 

젠장 읽을 수도 없네. 

1등석에 서빙하는 캐빈크루가 매력적이다. 

"캐빈크루, 혹시 이 주소 어떻게 읽나요?"

승무원이 새끼새끼 하면서 주소를 읽어준다. 왠지 욕하는 것하서 섹시하다. 

"혹시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일정이 어떻게 되요? 내가 여기를 찾아가야 하는데 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례는 내가 할께요."

이시준은 파텍필립 시계가 잘 보이게 자세를 고쳐앉으면서 물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일정이 빡빡해서. 그리고 회사 방침이 승객과 따로 만나는 것은..." 

젠장 이게 45억짜리인데 너무 레어해서 못알아본 모양이다.  좀더 대중적인 브랜드로 할 것 그랬나? 아무리 돈이 넘치는 시준집안에서도 이것을 살때는 부모님 설득하는데 힘들었다. 무슨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 시계가 45억이야.  그냥 로렉스 1억짜리가 좋쟎아. 시준은 뉴욕에서 럭셔리하게 살면서 쓸데 없이 예술적 취향만 높아져서 금딱지 같은 롤렉스나 흔해빠진 시계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파텍필립을 처음 본 순간 이거다 싶었다. 무었보다 시원하게 파인 자판뒤로 움직이는 게 많아서 좋다. 자판뒤에 복잡한 부품들이 숨겨진 시계들은 좀 지루하다. 시준은 가슴이 파인 원피스가 다 가린 오피스룩보다 취향이다. 이게 투자라서 20년 후에는 100억 간다고 설득하고, 이거 안사주면 나 교수 안할 거라고 협박해서 간신히 산 시계다. 

한국가면 그냥 좀 대중적인 브랜드로 한두개 더 살까보다. 

아이씨 러시아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찾지 하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지도교수가 자기 아는 교수 제자를 한명 보내준다고는 했는데. 


공항에 도착하여 개찰구를 빠져나갈 때 한글로 "이시준 교수님"이라는 푯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거구에 수염이 산적처럼 나고 배가 1톤 드럼통정도는 되어 보이는  대머리러시아 아저씨다. 저 사람이 교수가 보낸 사람인가 보다. 아이씨 그냥 돌아갈까 보다. 그때 

"ㅌㅌ 대학에 이시준 교수님이시지요?"

예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 깜짝 놀렀다.  청바지에 허름한 가죽재킷을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키는 좀 작고 볼륨도 약해보이지만 나름 지적이고 귀염상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스크바 대학에 구애린입니다.  제 지도교수님인 ㅌㅌ교수님의 부탁으로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러시아는 처음이시지요?"

갑자기 박사학위를 마무리하기 위한 증거를 찾기위해 러시아에 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내 지도교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영어도 못하고  러시아아도 못하고 여자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보냈을 것이다. 늙은 여우같으니라고. 지금 같아서는 지도 교수에게 thank you mail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바로 이위종동지 후손을 찾아가볼까요? 이쪽은 운전을 해주실 드미트리입니다" 

손을 내미는 산적같은 운전기사는 바로 무시하고 구애린에게 눈을 마주치며

"바쁠 것은 없어요. 호텔에서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면서 조금 쉬는 것은 어때요?"

파텍필립 시계가 잘 보이게 팔을 걷어 올린다. 어째 구애린의 얼굴은 무심한데 드미트리만 알아보고 좋아하는 것 같다. 젠장 

"지금 졸업작품 준비일정때문에 바빠서 시간을 많이 낼 수는 없네요. 오늘 해야할 일을 끝내요." 

이시준은 쉬크하게 "그럼 갑시다."

둘은 드미트리가 운전하는 벤츠 자동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이시준은 계속 시시콜콜 캐물었으나 구애린은 대답이 짧다.  차는 한참을 간다. 한시간을 달리니 창밖의 풍경이 점점 허허벌판으로 바뀌어간다. 한시간을 달려도 편의점 하나 없을 기세다. 

이시준은 오줌이 마려웠지만 구애린에게 부탁하기 싫어 참고 점점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구애린이 뭐라고 드미트리에게 씨바씨바 한다. 드미트리가 웃으면서 또 씨바씨바한다. 구애린이 원래 가려던 도로로 가면 3시간인데 거기가 공사중이라 돌아가니 한 4시간쯤 더 걸린데요 라고 한다. 뭐 4시간? 이시준은 그렇게 오래 참을 자신이 없다. 뭐 배도 고프니 근처 식당에서 화장실을 보면 되겠지. 구애린에게 내가 저녁을 살 테니 이 동네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했다. 구애린이 안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먹으려던 샌드위치를 가방에서 꺼내어 둘로 쪼개 이시준에게 준다. 딱딱한 빵에 두툼한 치즈밖에 없다. 이 근처에는 레스토랑이 없어요. 제가 먹으려고 싸온 건데 이거라도 먹을래요?  드미트리도 옆에 가방에서 뭔가 잔뜩든 샌드위치를 들고 먹으면서 운전하고 있다.   한입 먹어보니 별로 입맛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더이상 화장실을 참을 수 없다. 


이시준은 핸드폰을 꺼내 구글 번역기로 화장실이라고 찾아서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구애린에게 화장실 애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드미트리에게 화장실이라고 말하니 또 씨바씨바한다. 하 씨바 뭐라는 거야. 


구애린이 옆에서 한 30분만 더 가면 자기가 잘 아는 집이 있데요.  아이씨. 30분. 


30분 참을수 있을 것도 같고 없을 수도 있다.  구애린을 생각하며 그래도 웃는 표정을 유지한다. 악몽같은 30분이 지나고 차는 허름한 창고 같은 곳으로 도착했다. 도착하자 마자 이시준은 뛰어 내리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드미트리가 방향을 가르킨다. 아이씨 죽을뻔했네. 이제 좀 살겠다.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분위기가 쎄하다. 드미트리 주변에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모여있고 구애린이 뭐라고 화난 얼굴로 말하고 있다. 그러더니 구애린이 이시준 손을 헥 잡더니 시계를 벗겨서 드미트리에게 던진다. 


"어 내 시계. 애린씨 왜그래 " 

"잘 들어요. 눈 마주치지 말고 그냥 웃으면서 따라와요." 

애린이 손목을 잡고 나를 끈다. 

"아니 애린씨. 저게 얼마짜린데." 

"저 시계가 목숨보다 중요해요?"

뭐. 가만 보자. 우리집 재산이 얼만데. 그게 다 내껀데. 재산 물려받으면 하나 더 사면 돼지. 아무래도 목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시준은 상냥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냥 이거 너 가져 씨발롬아. 하면서 천천히 뒤걸음치면서 창고를 나섰다.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드미트리에게 뭐라고 하자 애린이 뭐라고 러시아로 소리친다. 

"뭐라는 거요?"

"이 사람 바보고 러시아 말 하나도 몰라. 나만 입다물면 이사람은 경찰서에 신고도 못해. 나는 이사람이랑 아무 관련 없어. 내가 왜 이사람을 도와서 경찰에 신고하겠어?"

"둘이 짠거아냐? " 

"멍청한 인간아. 러시아가 어떤 곳인줄 알고 그렇게 비싼 시계를 드러내놓고 다녀요. 드미트리가 죽이겠다는 거 간신히 말려서 살려놨더니. " 

"아니 좋은 시곈줄 알았어?"

"내가 어떻게 알아. 드미트리가 10억 짜리라길래 알았지. 여기선 10억이면 다섯 사람쯤 죽일 수 있어." 

"아 그거 45억 짜린데. 내가 드미트리에게 10억에 사면 안될까"

구애린이 한심한 눈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둘은 한참 후 애린의 친구가 타고온 덜컹거리는 고물차를 타고 유족의 집으로 향한다. 


"고인의 유품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이게 전부에요?"

낡은 사과상자안에는 편지뭉치와 사진, 그리고 하드커버 제본된 책이 들어있다. 


그는 이위종이 고호 그림을 산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위종이 남긴 흔적이나 일지등을 찾아해메고 있다. 이위종이 신혼초에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된다. 


사랑하는 엘리자베타. 

오늘도 회의장에는 들어가지 못했오. 기다리면서 거리에서 당신에게 줄 선물로 그림을 샀오. 좀 독특하고 이상한 그림이지만 당신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하오.  그걸 사는데 준은 엄청 화를 내더군. 나보고 나라가 망하는데 그림따위를 사고 있느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지. 나라가 도대체 뭐요? 임금이 자리에게 쫐겨나면 나라가 망하는거요? 잘 들으시요. 나라라는 것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백성이요.  준과 상설은 착한 친구들이긴 하지만 너무 고지식하더군.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고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인데.  그 친구들은 움직이는 시계를 붙잡고 멈추려고만 하고 있어."


움직이는 시계하니 갑자기 강도당한 시계가 생각나 화가난다. 하지만 이것봐라. 독특하고 이상한 그림? 

이 당시 이위종은 연설에서 일본제국뿐 아니라 고종의 만행도 고발했었다.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패, 과도한 세금징수와 가혹한 행정에 허덕여왔던 한국 국민과 정부는 애원과 희망으로 일본인들을 환영하였다. 그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이 부패한 정부 관리들을 엄격히 처벌해 주고, 일반 백성에게는 정의감을 북돋워 주고, 정부 당국의 정치․행정에 대해 진실한 조언자가 되고, 한국민들의 개혁운동을 잘 인도해 줄 것으로 확신하였다. 일본인들은 거듭하여 그들의 한국 진출은 그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문명국들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문호개방과 모든 백성을 위한 기회균등의 보존을 공고히 하기위함이라고 극구 강조하였다(이위종)[3]

찾았다. 물증이다. 애린도 상기된 표정이다. 뭐야 내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해서 좀 아나? 

"애린 하드커버된 책은 뭐지? "

"러시아에서 발간된 이위종씨의 자서전입니다. " 

유족들에게 이시준은 유품을 돈으로 사려하나 유가족들은 화를 내면서 거절한다. 애린이 시준을 내보내고 유가족을 설득한다. 이위종씨의 행적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좋은기회라고. 이 유품이 가족들 품에 있는 것과 NYU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연구되어 세상에 발표되는 것 어떤것이 더 고인을 기리는 것이겠느냐.  가족들은 그에게 기부한다.  혹은 반대 (애린이 설득하려다 실패하고 시준이 돈으로 산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시준은 지도교수에게 잔뜩 욕을 써서 보냈다. 

"그렇게 험한 러시아에 제자를 보내다니. 내가 45억짜리 시계를 강도당했다. 제자를 그렇게 위험한 곳에 보내도 되냐. 이게 다 당신때문이다. 증거고 뭐고 그냥 박사 학위는 당신 능력껏 통과시켜라. 다 학과내 정치라며. 그래도 애린이를 보낸 것은 참 잘했단. 당신 친구에게 애린이가 많이 도왔줬다고 꼭 전해줘라. " 

지도교수는 답장이 없다. 지도교수는 마피아에게 살해당하고 고흐의 그림을 추적하는 마피아가 이시준을 찾아온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장 근처 골목에서 팔았다. 그 그림을 산 사람은 당시 러시아 공산관에 근무하였던 이위준이다. 그는 고종황제의 명을 받고 이상설, 이준과 함께 헤이그에 왔다. 한국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던 이상설, 이준과 달리 그는 이미 프랑스, 러시아에서 오랬동안 지내면서 서양문물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이위종은 프랑스에서 공사관 서기생으로 주재할 때 유럽의 명문 사관학교인 프랑스 생 시르 육군사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정규 졸업했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외교관 이범진이다. 이위종은 1906년에 러시아 귀족의 딸 엘리자베타와 결혼했다. 이위종의 후손들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으며 이위종의 둘째 딸 니나의 슬하에 아들 바실리비치(작고)와 딸 류드밀라 예피모바가 있다. 류드밀라 예피모바에겐 타치아나와 율리아 피스쿨로바 두 딸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아들을 두고 있어 이위종의 후손은 모두 다섯명이 현재(2020 8.) 생존해 있다. 


이위종이 그림을 살때 이준이 엄청 화를 내었다. 지금 나라가 망해가는데 그림같은 것을 살 때 인가? 이상설이 말리지 않았더러면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했다. 이위종은 이미 조선은 망했네.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네. 라고 반박하네. 

이 당시 이위종은 연설에서 일본제국뿐 아니라 고종의 만행도 고발했었다.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패, 과도한 세금징수와 가혹한 행정에 허덕여왔던 한국 국민과 정부는 애원과 희망으로 일본인들을 환영하였다. 그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이 부패한 정부 관리들을 엄격히 처벌해 주고, 일반 백성에게는 정의감을 북돋워 주고, 정부 당국의 정치․행정에 대해 진실한 조언자가 되고, 한국민들의 개혁운동을 잘 인도해 줄 것으로 확신하였다. 일본인들은 거듭하여 그들의 한국 진출은 그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문명국들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문호개방과 모든 백성을 위한 기회균등의 보존을 공고히 하기위함이라고 극구 강조하였다(이위종)[3]

이위종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근대교육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근대사상의 조류들이 유행하는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철저한 근왕주의자인 이범진보다 정치사상 면에서 진보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1896년 7월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부친의 영향으로 나이 어린 야무진 군권주의자의 면모를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907년 7월 헤이그 국제협회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연설을 했을 때에 대한제국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패, 과도한 세금징수, 가혹한 행정 등으로 인해 인민이 고생하고 있음을 인정했을 뿐더러 그러한 정치를 ‘구체제하 정부의 잔혹한 정치’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는 이위종이 고종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고종의 통치에 대해서 깊은 불만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1919년 8월에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국민들만이 미국인들처럼 사리사욕을 쫓지 않고 박해받는 자들의 자유를 위해 진정으로 투쟁할 수 있다”며 미국의 자본주의체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적극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는 이위종의 정치사상이 군권주의에서 민주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전환해 갔음을 나타내 준다고 생각한다[4]



주인공은 돈이 많은 친일파의 후손. 유언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뭘 새로 하려고 하지 마라. 부모의 유일한 할 일은 빌딩의 월세를 수금하는 것. 그래서 일부러 월화수목금요일에 모두 다른 곳에서 현금으로 받는다.  뒷산에 심심해서 치려고 골프홀을 3홀 파고 또 파고 하다 보니 18홀 소유. 주인공은 돈 많고 할 일 없는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고고미술학 전공. 집에서 하도 한국에서 사고를 쳐대니 챙피하다며 유학이나 가라고 함.  전공자하려는 사람도 없고  비싼 학비를 다 내고 뉴욕에서 phd 프로그램 이수하였음. phd 시절에 심심해서 뉴욕 Metropolitan 에서 고호 그림에 처음 매혹되기 시작함.  Theo와 Vincent의 unpublished letter arxiv도 거기서 공부하게됨. 


""  뉴욕에서 이쁜 미대생을 꼬시려고 던진 멘트.  물론 결혼에는 관심없음. 

박사 논문 주제는 "The lost masterpiece of Vincent Van Gogh".  원래는 The lost picture of .. 였지만 지도 교수가 바꿈. 주인공은 보지도 않는 그림이 master piece인지 어떻게 아냐면서 너무 제목이 상업적이라고 하였지만 학계도 원래 관심을 먹고 산다면서 이게  academic marketing이라 함. 한국에 귀국해서는 별로 취직에 관심이 없음. 그런데 지방 사립대에서 1억원을 내면 임용시켜준다고 함. 내가 그런 시시한 학교에 뭐 내돈 내면서까지 다니냐면서 거절함. 하지만 부모님이 일자 무식 집안에서 드디어 교수가 나왔다면서 좋아하면서 주인공 몰래 뒷돈을 대고 주인공을 임용시킴. 

처음 시작은 러시아에 살고 있는 이위종의 후손들에게 한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그 주인공은 돈이 많기 때문에 여비를 자비로 충당.  그는 이위종이 고호 그림을 산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위종이 남긴 흔적이나 일지등을 찾아해메고 있다. 이위종이 신혼초에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된다. 


사랑하는 엘리자베타. 

오늘도 회의장에는 들어가지 못했오. 기다리면서 거리에서 당신에게 줄 선물로 그림을 샀오. 좀 독특하고 이상한 그림이지만 당신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하오. 



중간에 어떤 사람들의 습격도 받는다. 역시 고호의 그림을 추적하는 사람들이다.  이위종의 그림을 추적하면서 러시아, 미국, 블라디보스토크 에서 독립운동 하던 사람의 흔적들, 상테스부르크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기획하던 역사의 흔적을 그리자. 


마지막으로 그림은 황학동의 풍물시장에 있다. 이준이 죽자 그를 안쓰럽게 여긴 이위종이 작별 선물로 그림을 보자기에 싸서 무덤에 넣어 주었고, 1963년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될때 그의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다.  사위 류자후는 1945년 10월 이승만이 귀국하자 한 달 간 돈암장에서 이승만 내외를 보필하였다.[6] 그러나 관상을 볼 줄 알던 류자후는 이승만의 관상이 좋지 않다[6] 며, 이승만의 비서들이 11월부터 귀국하거나 돈암장을 찾아오자 서서히 그들에게 일을 넘기고 이승만의 곁에서 물러나왔다.  사위 류자후는 그 그림을 잘 보관하라 유언을 남겼지만 후손들은 돈이 없어 황학동 시장에 넘긴것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림을 찾지만 그림을 그냥 가지고 있는다.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에게 매달 돈봉투가 배달된다.  


이시준 마사지 샾에서 

사장님 뭐하시는 분인데 이렇게 안뭉치셨어요.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스트레스없기가 힘든데 

허허 제가 공부를 오래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예민한 편입니다. 


첫장면에서 쓰고 엄마에게 시계를 받아서 그냥 학교 나가는 것으로 할까? 


미술관에서 여자꼬시는 것은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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